건강한 음식 공부

감자1

해올777 2024. 7. 1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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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쌍떡잎식물 통화나물목 가짓과의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벼,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작물에 포함된다. 또한 고구마, 옥수수와 함께 대표적인 구황작물로서 세계를 기아의 공포에서 구제한 작물이기도 하다. 남미 안데스 지역인 페루와 북부 볼리비아가 원산지이며, 든든한 한 끼로도 손색없는 주식이며 부식이기도 하다. 16세기 중후반, 콜럼버스의 남미 탐험 이후에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유럽에 전래하였으나 초기에는 강한 거부감으로 인해 외면받기도 했다. 관상용, 가축 사료, 소수의 가난한 하층민들의 식품으로 이용되다가 18세기 후반부터 구황식품이자 주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인구폭발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아일랜드와 독일 등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주식으로 사용되었다. 다양한 요리에서 식재료로 사용됐다. 특히 포테이토 칩과 프렌치프라이 등은 현대인에게 매우 친숙한 식재료이다. 미국 항공우주국에서도 감자를 우주인의 식량자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무중력 공간에서의 실험과 개발을 지속했다. 감자는 4,000m 고산지대나 추운 지역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다. 단기간에 속하는 3개월에 수확에 가능하며 양분을 땅속에 저장하므로 전란에도 피해를 보지 않는다. 가뭄에 강하고, 다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도 수확할 수 있다. 척박한 환경에 강하며, 수확 후 별도 가공 없이 즉시 요리할 수 있다. 뿌리가 아닌 줄기를 식용하며 이를 덩이줄기라고 한다. 하지감자, 지슬, 북감저, 마령서 등의 한국 감자가 있다. 1824년 처음 전래되었으며 본격적인 재배는 한국전쟁 이후부터였다. 한국인에게 감자란 가난의 상징이며,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을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시설재배를 통해 2월에 출하하고 내륙에서는 6월 말, 강원 특별자치도 고랭지 감자는 10월에 수확한다. 1년 내내 신선한 감자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총생산량은 20년 기준 약 3억 6천만톤, 40조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했다. 중국이 최대 생산국이고 7천8백만톤으로 전 세계 총생산량의 22%를 생산한다. 한국은 매년 약 70여만톤으로 수미감자가 전체 생산량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페루, 칠레, 볼리비아의 안데스 고지대와 티티카카 호수 주변부가 감자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약 7000여년 이전 시기부터 재배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000년경 전성기를 이루었던 모체문화의 토기에서 감자 같은 모습의 식물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일찍부터 지역 원주민의 주식으로 생각된다. 감자는 해발 4,000m 고지대에서 재배가 가능하며, 잉카제국의 주식 중 하나였다. 남미 원주민들은 감자를 장기 저장하기 위해 냉동 건조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추뇨라는 저장식품으로 만들었다. 그 제조 과정은 단순한데, 감자를 밤새 외부에 두어 서리를 맞춰 수분을 제거한다. 다음날 언 감자를 밟아서 물기를 한 번 더 제거한다. 낮 동안 햇볕에 말리는 과정을 최소 세 번에서 열 번 이상 반복하여 추뇨를 만들 수 있다. 최대 4주의 완성 기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안데스 지역의 큰 일교차를 이용해 동결 건조 감자를 만들었다. 추뇨는 냉장 보관하지 않아도 10년 동안 상하지 않았다. 장기저장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을 지녔다. 흉년을 대비한 좋은 식량자원으로 추뇨가 사용되었다. 수분이 거의 없어 가볍기 때문에 운반이 용이했다. 군대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세금으로 납부하기도 했다. 고대 잉카제국을 건설할 때 일꾼들에게 제공되었다. 스페인의 은광 개발 시 원주민 노동자들에게 추뇨가 제공되기도 했다. 감자 껍질의 유무에 따라 추뇨 블랑코와 추뇨 네그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영양학적으로 탄수화물,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건조과정을 거쳤기에 비타민D와 단백질 함량이 높았다. 1536년 남미지역에서 황금을 찾아 나섰던 스페인 탐험가 곤잘로 히메네스 데 케사다가 안데스 원주민들이 주식으로 삼던 감자를 처음 발견했다. 같은 해 항해용 비상식량으로 감자를 선적했다는 기록이 있다. 스페인 식민지 지배자들은 포토시 은광산에서 인디오들에게 말린 감자(추뇨)를 공급했다. 또 1573년 스페인 세비야의 상그레 병원의 구입 목록에도 감자가 있다. 남미에서는 수천 년간에 걸쳐 주식으로 검증되었으나, 16세기 처음 유럽에 전래하였을 때 그들의 거부감이 커서 전혀 환영받지 못했다. 18세기 후반부터 식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고질적인 기근을 극복하게 해준 고마운 구황작물이 되었다. 이런 감자의 도입은 식량 혁명이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유럽에 감자가 전래될 당시, 유럽에는 무나 당근 등이 있어 뿌리채소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단지 감자는 이들과 달리 땅속에서 성장하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양새 등으로 인해 좋게 인식되지 않았다. 시체를 잘라 파묻듯이 하는 번식 방법이 기괴하고 상스러워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감을 지녔으며 ‘악마의 야채’라고 부르기도 했다.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부정한 식품이며 신이 허락하지 않는 음식물로 생각되었다. 200여년 동안 감자는 관상용 재배, 돼지나 먹는 가축 사료, 하층민들의 ‘빈민의 빵’이었을 뿐이나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와 프랑스 농경학자 파르망티에의 노력으로 편견이 조금씩 깨어졌다. 19세기 좋은 구황작물이자 식품으로 이미지가 개선되어 식탁에 자주 올라갈 수 있었다. 이는 18세기의 빈번했던 흉년과 전쟁에 의한 기근,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자원이 부족한 이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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