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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4

한국1824년(순조 24) 청나라 사람들이 산삼을 찾기 위해 숨어들어왔다가 식량으로 쓰려고 몰래 산간 지역에 경작하면서 한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청나라 심마니들이 길목마다 감자를 심어놓고 양식이 떨어지면 비상식량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함경도에서 떠도는 말로 “감자가 강을 건넜다”라는 말이 있다. 청나라 심마니들이 국경을 넘어 감자를 심었다는 뜻이다.순조 28년, 29년 흉년이 있었는데 감자 종자를 많이 뿌려둔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굶어 죽는 것을 면했다고 한다. 1862년 김창한의 “원저보”에 의하면 순조 32년 7월 전라도 해안에 영국 상선 로드 애머스트 호가 표류했다. 이 상선에 타고 있던 독일 선교사 귀츨라프가 감자 종자와 한문으로 쓴 재배법을 김..

감자3

(2)에 이어서 그 외 다른 나라들.-영국월터 롤리 경이 스페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감자를 들여왔다는 설이 있다. 또 유럽 지역과 달리 가장 늦은 19세기 중반 이후에야 감자를 식품으로 받아들였다. 그간 아일랜드가 감자를 주식으로 삼자 ‘돼지 사료를 먹는 미개하고 지저분한 민족’이란 비난을 퍼부었는데, 16세기 단행된 종교개혁으로 반교황 주의와 식민지 지배 민족으로서 우월감에 입각한 발언이었다.1765년에는 ‘감자는 가라. 교황 주의자도 가라’라는 구호로 감자를 정치도구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고 인구 증가와 더불어 19세기 기근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점차 감자를 식품으로 받아들였다.1860년 조셉 말린은 흰살생선과 감자칩을 함께 튀겨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이 튀김 요..

감자2

밀은 유럽인들의 주식인 빵의 재료이지만 전란과 가뭄 등 이상기후에 민감했다. 반해 감자는 척박한 환경에 뛰어난 구황작물이었다. 기르는데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고, 수확 후에도 별도의 가공이 필요 없었다.오븐을 이용해 많은 연료를 소비하는 빵과 달리 감자는 냄비 하나만 있으면 요리할 수 있었다. 영양가 면에서도 훌륭한 식품이라 인구 증가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8개월 만에 수확했고, 고구마와 달리 장기 저장도 가능하다. 겨울이 다가오면 가장 부담이 되는 가축은 돼지이다. 유용한 다른 동물들과 달리 돼지는 먹기만 하고, 특히 잡식성이라 사람과 먹이경쟁을 벌이는 가축이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돼지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그때 유용한 것이 감자였다.이전에 돼지는 추워질 때 번식용을 제외하고 도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