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천문학 선사시대, 고인돌 덮개돌에서 별자리 모양이 발견됐다. 한국의 역대 왕조는 천상(天象)을 국가와 왕자의 안위를 내다보기 위한 점성적(占星的)인 것으로 보았다. 하늘의 현상에 대한 민감성은 천문학을 발전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특히 일, 월식의, 예언은 국가적 권위를 백성들에게 과시하는 결과였다. 기원전 108년 한사군 설치 이후 중국의 한 대문화가 유입되었다. 그러면서 중국의 우주관인 개천설과 혼천설이 들어와서 4,5세기경에는 삼국의 천문학 속에 토착화되었다. 그것은 먼저 고구려, 다음에는 백제와 신라에서 그 영향이 발견된다. 고구려의 여러 고분에 그려진 일월성신도와 그 구조의 특징에서 특히 백제와 신라의 천문대에서 제1차적1 개천설, 즉 천원지방의 사상적 상징을 찾을 수 있다. 신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