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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화, 탐라(1)

해올777 2024. 7. 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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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화
동아시아의 다른 신화와 유사한 점이 꽤 있다.
특히 시베리아와 만주의 샤머니즘 무(巫)의 전통이 있는 지역과 유사한 신화 체계를 보인다. 도교, 불교의 영향으로 무(巫), 불교, 도교가 절충되어 있다.
크게는 건국 신화와 무(巫) 신화로 나뉜다. 한국의 건국 신화는 단군 신화 및 삼국 시대의 동명왕 개국 설화 및 비류, 온조, 등의 영웅 신화와 천손 신화적 성격을 띤 북방계와 박혁거세,알영, 석탈해, 김알지 등의 난생 신화의 남방계 등으로 나뉜다.

무(巫) 신화는 무당들 사이에서 전승되었다. 민담과 불교의 요소가 섞여 있다. 건국 신화와 비교해 초자연적인 존재가 피동적인 역할이 아니라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 영웅 신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모티브가 존재한다.

한국 신화가 다른 신화에 비해 두드러지는 점은 신화의 비 체계성이다.

분류
형태를 기준으로 문헌신화와 구전신화가 있다. 문헌신화의 출처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동국이상국집,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규원사화 등이다.

구전신화는 문헌에 기록되지 않고 전해진 것이다. 민간 신화와 무속 신화가 있다. 오늘날 현지 조사를 통해 여러 학자에 의해 채집되고 있다. 주제별로 분류하면 우주 발생 신화, 인간 탄생 신화, 문명 기원 신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우주 발생 신화는 제주 지방에서 굿할 때 부르는 와 함남 지방의  등이 있다.
한국의 경우, 천지개벽형이 대부분이지만 일반적인 유형에는 ‘무로부터의 창조’, ‘알에서의 탄생’, ‘천지개벽’등이 있다.

인간탄생신화에는 ,당곰애기신화>  등이 있다.

하지만 신화 중 가장 많은 것은 문명 기원 신화이다. 문명 기원 신화는 농경, 치병, 건국 등 문화의 기원을 다루는 신화를 말한다. 제주 지방의  고창의  등이 이에 속한다.

제주도 탐라국 건국에 관한 신화도 있다.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세 사람이 땅에서 솟아올라 탐라국을 건설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러한 신화는 민족의 세계관 및 신앙 내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단군신화
한민족의 신화는 대체로 민족 이동기 이후에 형성된 듯하다. 천지개벽 신화는 적고 대개 국조나 건국 신화가 많다. 하느님 환인의 서자 환웅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태백산(지금의 묘향산) 박달나무 밑에 신시(神市)를 열고 나라를 다스렸다. 그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인간이 되기를 빌었다. 환웅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며 100일 동안 해를 보지 말고 기도하라 하였다. 곰은 기도하여 여자가 되었고, 범은 포기하여 인간이 되지 못했다. 다시 여자가 된 곰이 아이 낳기를 바라니 환웅이 거짓 혼인해 아들을 낳게 하였다. 그 아들이 단군왕검이다.

세 가지 천부인을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환웅 신화는 완전한 신화 체계를 가지고 있다. 환웅과 한민족의 토템인 곰이 사랑과 풍요를 상징해 여자로 환생했고, 다시 단군을 낳았다는 단군 신화는 부족 명 또는 모성 사회를 상정하는 것일 수 있다. 민족 신념으로 보면 홍익인간의 정신과 민족의 창조성이 깃들었다.

-동명 신화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의 신화이다. 고구려의 주몽 신화는 동명왕 신화를 모티브로 한다.

-주몽 신화
쑹화강(송화강) 유역의 부여족 계열에서 분파되던 데서 비롯해 함록강 중류의 훈강 유역으로 이어진 한의 제군을 무찔러 대고구려국을 건설한 기나긴 역사를 주몽의 위대한 일대기로 압축, 반영한 신화이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명왕편>에 일대 장편 서사시로 미화되고, 중국의 에도 수록되었으며, , , ,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탐라
제주도에 존재했던 왕국이다. 남북국 시대까진 국가적 지위에서 한반도의 나라들과 교류했다. 
하지만 고려 초 독립적 지위를 상실했고, 복속되었다. 460여년에 걸친 성주시대 동안 제주 고씨가 성주로서 서 탐라를 다스렸다. 남평 문씨가 왕자로서 동 탐라를 다스리며 자치권을 유지하다가 1404년 병합되었다.


국호 탐모라국, 섭라, 탁라, 담모라, 담라로 지칭되었다. 모두 ‘섬나라’를 의미한다. 동이전에서는 주호라고 적고 있다.


건국 신화
세 명의 시조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는 기원전 24세기에 땅의 세 개의 구멍에서 나왔다. 삼성혈로 알려진 이 구멍은 지금도 제주시에 있다.

태초에 사람이 없었는데, 세 신인이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부터 솟아올랐다. 맏이는 양을나, 둘째는 고을나, 셋째는 부을나였다. 세 사람은 수렵하면서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었다. 어느 날 나무 상자가 동쪽 바닷가로 떠내려온 것을 발견하고 열어보니 그 안에 붉은 띠에 자줏빛 옷을 입은 한 사람이 석함 하나와 있었다. 석함을 여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구독(망아지와 송아지 등 가축)과 오곡(五穀)의 종자가 있었다. 사자가 이르기를 “우리는 일본국의 사신입니다. 우리 왕이 세 왕녀를 낳고 말하기를 ‘서해의 중악에 신자(神子) 세 사람이 내려와 장차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구나’하고 저에게 분부하여 세 딸을 모시고 여기에 오도록 했습니다.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시라고 말한 뒤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세 사람이 세 여자를 맞아 아내로 삼고, 샘이 달고 땅이 비옥한 곳으로 가서 화살을 쏘아 땅을 점쳤다. 양을나가 사는 곳이 제일도, 고을나가 사는 곳이 제이도, 부을나가 사는 곳이 제삼도였다.--고려사 권 57
설화에 따르면 양을나가 제주도에 온 후, 반신화적인 상자가 해안에 밀려왔다. 양을나는 상자를 뒤져 세 여인, 말, 소, 그리고 쌀과 곡식 보리, 대나무 등의 농경 종자를 발견했다. 세 사람은 탐라국을 세웠고 제주 양 본관의 시조인 양당의 전설적인 조상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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