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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천문학

해올777 2024. 8. 6.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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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천문학

 

선사시대, 고인돌 덮개돌에서 별자리 모양이 발견됐다. 한국의 역대 왕조는 천상(天象)을 국가와 왕자의 안위를 내다보기 위한 점성적(占星的)인 것으로 보았다. 하늘의 현상에 대한 민감성은 천문학을 발전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특히 일, 월식의, 예언은 국가적 권위를 백성들에게 과시하는 결과였다.

기원전 108년 한사군 설치 이후 중국의 한 대문화가 유입되었다. 그러면서 중국의 우주관인 개천설과 혼천설이 들어와서 4,5세기경에는 삼국의 천문학 속에 토착화되었다. 그것은 먼저 고구려, 다음에는 백제와 신라에서 그 영향이 발견된다. 고구려의 여러 고분에 그려진 일월성신도와 그 구조의 특징에서 특히 백제와 신라의 천문대에서 제1차적1 개천설, 즉 천원지방의 사상적 상징을 찾을 수 있다.

 

신라의 첨성대

경상북도 경주시 반월성 동북쪽에 위치한 신라 중기의 석조 건축물이다. 선덕여왕 때에 세워진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 중 하나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전통적으로 별을 관찰하는 천문대의 기능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주목받았다.. 그 위에 목조 구조물이 세워져 혼천의가 설치되었으리라는 생각과 개방식 으로서의 관측대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첨성대는 창문을 제외하면 어느 방향에서나 같은 모양이며 계절과 태양의 이치에 관계없이 일구를 측정하여 시간을 헤아릴 수 있으므로 4가지 계절과 2424 절기를 확실히 정할 수 있다. 정남으로 열린 창문은 사람이 사다리를 걸쳐 놓고 오르내리는 데도 쓰였지만, , 추분에 태양이 남중할 때 이 창문을 통하여 태양광선이 바로 대 안의 밑바닥까지 완전히 비출 수 있는 위치에 열려 있다. 그러므로 동, 하지에는 창문 아래 부분에서 광선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분점과 지점 측정의 보조역할도 할 수 있다. 이런 절기의 정확한 측정에 의하여 역법을 바로 잡기 위한 측경을 목적으로 설립된 규표, 즉 측경대로서 일구를 측정하는 천문대일 뿐 아니라, 신라 천문 관측의 중심지로 천문관측에서 자오선과 동서남북 4방위의 표준으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고려시대에는 천문학에 있어서 천체관측이 특히 발달했다. 그 관측기록은 독자적이고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있다. 개성 만월대 서쪽에 세운 개성 첨성대가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서운관(書雲觀)을 두고 천체관측과 기상관측기계의 제작과 시설의 정비, 관측 제도의 완비와 자주적 역법체계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세종 15년에 혼천의를 완성했고 또 간의대와 강의를 두어 본격적인 천문학 기틀을 확립했다. 이어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었고 자주적 역법의 확립을 위해 역서인 칠정산내외 편을 간행했다. 그러나 우주의 본질과 체계에 관한 이론은 중국 고대의 혼천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효종대에 시헌역법의 시행을 가져왔고 현종대에 천문시계를 제작했다. 숙종대에 북극고도의 새로운 측정, 천문도의 재각 등 새로운 기운이 싹텄다. 그리고 인조 9년 서양천문학의 추산법이 들어왔다. 인조 23년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돌아올 때 탕약망이 번역한 서양천문학서와 그다음 해 김육이 가져온 탕약망의 천문역학서에 의해 서양천문학이 거의 완전하게 조선 천문학자들에게 전해지고 받아들여졌다.

고종 31년 서양의 태양력을 썼고, 시헌력을 참용했다. 공식적으로는 태양력을 시행했으나 절후와 기진, 생일 등의 행사에는 모두 시헌력을 썼다. 광무 8년 천세력을 개정하여 만세력으로 하고 널리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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